휴대폰 카메라로 계약서를 찍었다. 주머니에 넣었던 사진은 되돌려 놓을까 고민하다가 한 장 챙겼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시 확인했다. 처음 봤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다만 장롱을 다시 잠그는 방법을 오래 생각해야 했다. 나는 가구를 움직였고 뚫린 뒷 칸으로 기어 올라가 잠금쇠를 걸었다. 다시 가구를 되돌려놓고 들린 자...
"만났지. 너 왜 못 온 거야? 무슨 일 있어? 한참 걱정했잖아." 나는 잠시 눈을 꼭 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통화를 계속했다. '정말 미안해... 계속 가게 앞에서 붙잡혀 있었어.' "붙잡혀 있었다고? 자세히 말해 봐." 두원은 숨을 고르더니 마저 말했다. '어. 포박당한 채로 한 시간 동안 잡혀 ...
눈을 떴다. 아침에 일어나니 곁에 쿠기냥이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적막이 감도는 내부는 조금 추운 느낌이 들었다. 보일러 온도계를 보니 23도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나는 보일러를 돌리고 소파에 앉았다. 출출한 느낌이 들어 부엌 쪽을 곁눈질했다. 부엌 탁상에 쿠기냥이 남긴 메모를 발견했다. 아마 장을 보러 외출을 한 참인 것 같았...
쿠기냥이 나를 데려간 곳은 새하얀 방이었다. 그 방은 쿠기냥의 집 중에서 가장 작은 방에 놓여있는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바깥에서 본 것에 비해 내부가 꽤 넓어 보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벽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고 책의 표지에는 아무런 제목도 붙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희고 투명한 것들만이 이 공간에 놓여 있...
새벽.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컥, 커헉" 급하게 화장실로 튀어나가 그날 저녁에 먹은 것을 토해냈다. 먹은 것보다 마신 것이 많아 멀건 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기어가듯이 침대로 갔다. 쿠기냥에게 전화를 할까 싶어 휴대폰을 들었다가 다시 잠금 상태로 돌려놓았다. 긴 꿈을 꿨다. 무언가 크게 잊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훤칠한 키에 체크무늬 레그웨어, 검은 리본이 달린 펠트 헤드, 팔랑팔랑한 레이스가 달린 카라. 상의에는 리본이 세 개나 박혀 있었다. 베이스를 하나도 칠하지 않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멋대로 그은 아이섀도, 온갖 치장에 비해서 비교적 적게 드러난 피부에는 군데군데 잔근육이 드러났다. 머리카락은 밝은 금색이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브릿지 넣은 분홍색이 도드라졌다...
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 사실상 거의 버린 포스타입이었는데 지인의 요청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부족한 글과 그림이어서 부끄럽습니다만, 언젠가 누군가의 재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예전 캐해석이 궁금해서 접속했다가 모든 글이 임시저장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던 것도 비슷한 논리이긴 했습니다. 게임은 여전히 ...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 여자의 팔을 붙잡고 세상 밖으로 뛰어갈 용기가 있었더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수십 개의 시선이 뒤엉켰다. 나를 향하는 불안한 시선들이었다. 나는 여자에게 경고했던 말을 떠올렸다. 위험을 피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당신의 본능을 믿어요. 그 말의 파편이 여자가 아닌 자신를 향하고 있었던 것...
"대표님! 대표님! 어디계세요?" 나는 서재에 읽던 책을 다시 책장에 집어넣었다. 다급한 목소리였고. 그건 유연이 낼 수 있는 목소리 중에 가장 혼란스러운 말투였다. 내가 시간 여행을 갔다온 뒤로 유연은 때때로 나를 찾았다. 잠에서 깼을 때나, 정지된 시간 속에 멈춰 있을 때도 나를 찾았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식은땀 범벅이 된 여자가 서재를 벌컥, 열...
빗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눈꺼풀을 빗겨나가 눈 속으로 흡수되는 빗방울도 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가 빗물로 뭉개지는 것이 느껴진다. 입고 있던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그대로 가만히 서있었다. 주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길 바랐다. 손을 뻗는다. 빗물이 후두둑 만져진다. 빗방울을 공중에서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대로 환자복 안으로 스며든다.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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